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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y Notes

진화≠진보

아래는 이전 블로그에 올렸던 포스트입니다. (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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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난 수억년간의 진화적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생태학적/문화적 환경에 적응한 유전자가 선택되어왔고 이를 진화라 부른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인류는 식량을 구해 생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업이었다. 자연히 인간의 유전자에는 고효율의 영양분을 선호하는 경향이 축적되어왔다. 다시 말해 지방질이 많은 육류를 좋아하는 것은 —나의 경우 지방 덩어리인 도미노피자의 갈릭소스나 치즈 듬뿍듬뿍— 열악한 환경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보라 오이시~ 이 기름덩어리를 

 
우리의 유전자 하나하나에 각인된 이러한 성향이 진화적 과거의 대부분에는 개체의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나 근 수십년간 가히 농업혁명이라 불릴 만한 농업 생산량 증대로 인해 과거의 '열악했던 환경'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을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살과의 전쟁 내지 비만과의 전쟁 류의 쏟아지는 다큐멘터리들, 피둥피둥뒤뚱뒤뚱 유치원생 등의 이미지들을 힘들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위에 언급한 '환경의 변화'의 반증이라 하겠다. 

조탄다. 조태. 하긴 요 앨범 죽이긴하지. 
Fatboy Slim : 01.Right Here, Right Now / 09. Praise You

 
그런데 수십억년동안 발전시켜놓은 지방찾아삼만리유전자는 지난 반세기 간에 이루어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 단위의 변이가 유전되고 선택될 만큼의 시간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적합도와 현재의 적합도가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다. 더이상 지방을 먼저 저장하여 생존률을 높히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사는 현대 인간에게 지방의 과도한 섭취는 성인병 유발의 주요 원인으로 오히려 적응도를 저해하는 것이다. 

진화와 진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문화는 미개사회(식민지)에서 문명사회(유럽)로 진화해야 한다는 발상의 19세기 사회진화론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진화는 진보나 발전과는 연관이 없는 개념이다. 진보나 발전을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합리화/경제화라고 한다면 진화는 특정한 방향을 지니지 않은 임기응변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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