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업데이트는 하는 게 좋다. Windows나 Mac OSX 같은 운영체제 수준은 물론이고
작은 어플리케이션들도 업데이트를 하면서 갖가지 버그를 수정하고 성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데이트가 항상 좋다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다.
예전에 싸이월드에 포스팅했던 글을 싣는다.
나같은 업그레이드병 환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한글 시리즈의 예를 보자.
한글 97은 꽤나 오래전에 나왔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다른 어떤 문서편집 프로그램보다 자주사용된다.(메모장 빼고)
하지만 한글 97의 후속버전으로 출시된 한글 워디안, 한글 2002, 한글 2004 는 기능상으로는 여러모로 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저장형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한글 97에서는 한글의 차기 버전에서 작성한 문서를 읽어들일 수가 없다.
공개 프로그램으로 한글2002뷰어를 사용하면 한글2002가 깔리지 않은 컴퓨터에서도 한글워디안이나 2002 혹은 2004에서 작성한 문서를 읽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각 한글 버전으로 작성한 문서를 다른 버전의 문서로 전환하는 컨버터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브프로그램을 사용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다수의 컴퓨터 미디어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안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은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 한글97을, 한글2002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같은 프로그램이라면 각 버전간에 완벽한 호환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하위 버전에서 존재하는 옵션을 사용한 경우에는.)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데
급하게 보고서를 제출해야하기에 학교의 중앙전산실에 들렀다.
한글 97로 작성한 문서이기 때문에 중앙전산실에는 한글 2002만 설치되어있음에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위 버전인 한글 2002가 한글 97의 문서를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딕체의 문자가 신명조로 구현되고, 표가 완전히 뒤틀려있었다.
고마운 한글2002 덕분에 나는 워드 작업을 상당 부분 다시해야 했고수업은 놓쳐버렸다.
그래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QuarkExpress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 PC가 아닌 Apple의 MAC 전용 프로그램인데(PC버젼도 출시됨) 현재 5.0이 최고 버젼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면 인쇄소 등에서 표지나 간지 등의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쓰는 thing이다.
나같은 업그레이드병 중환자은 최신 버젼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떻게든 구해서 깔 것이다. (그런 사람도 때때로 필요하긴 하다. 모험하기를 좋아한다면. )
하지만 거의 모든 인쇄소에 QuarkExpress 5,0으로 제작된 파일을 가져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디스켓이 될 것이다. 기능은 5.0이 더 좋을지 몰라도, 인쇄소에서는 3.3을 쓴다.(숫자는 정확하지 않으니 딴지 걸지 마시오.) 물질 세상은 전선을 타고, 전파를 타고 이동하는 정보의 속도를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말이 조금 샜는데, 아니 많이 샜는데,
요는,
이렇다.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는 치명적 버그의 패치를 위한 게 아니라면
의무감에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그레이드를 할 때는 상위 버전에서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미지 보는 프로그램의 대명사 ACDSEE와 Winamp를 봐도 알 수 있다. 베타버전 부터 얼마간 ACDSEE는 이미지만 볼 수 있는 매우 가벼운 프로그램(application)이었다. 명성을 얻어가면서 ACD社는 신버전을 속속 출시하는데 현재 6.0 버전까지 나왔다. 그러면서 사진의 편집 기능을 추가하고 세부적인 체계를 다시 세웠다. 그러는 사이 이 프로그램은 상당히 무거워졌다. 용량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구동시간도 (편집 app까지 켠다면)토토샵에 맞먹는다.
윈앰프도 2.x 버젼에서 3.0 버젼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상당히 육중해졌다. 비디오와 이미지 보기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프로그램의 진화과정에서 육중해지고 덩치도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쓸모없는 기능이 그 덩치를 차지하는 것은 없어야 할 일이다. 항상 나의 어머니께서 말하는
'물건을 볼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용성'은 소프트웨어의 경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비롯하여 필요한 기능의 효과적이고 쉬운 구현 이 소프트웨어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는 새로운 버젼에 집착할 필요 없이 자신이 사용하는 기능이 있는 버젼을 사용하면 그걸로 족하다. 괜히 컴퓨터에 무리 줄 필요는 없다.